세 가지가 함께 진행됩니다. 잠은 들지만 잠의 구조가 얕은 쪽으로 기울고, 같은 용량의 효과가 조금씩 줄고, 나이가 들수록 밤보다 낮에 위험이 커집니다. 다만 이 글은 지금 약을 끊으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임의 중단은 오래 복용하신 분에게 더 위험합니다.
양산 호랑이부부한의원 정범환 원장입니다.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로서 이 글을 직접 작성합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처음엔 반 알로도 잤는데, 지금은 한 알을 먹어도 예전 같지가 않아요.”
잠은 드는데, 잠의 구조가 바뀝니다
수면제는 잠드는 시간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잠의 내용은 달라집니다.
벤조디아제핀을 오래 복용하면 얕은 2단계 수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3·4단계 깊은 수면과 1단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늘어난 2단계 수면은 주관적으로는 ‘잘 잤다’는 느낌과 연결됩니다.
불면이 있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장기 복용군은 약을 쓰지 않는 불면군이나 정상 수면군보다 가장 얕은 N1 수면이 많고 깊은 N3 수면이 적었으며, 얕은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이 더 잦았습니다.
깊은 잠은 몸이 회복하고 기억을 정리하는 구간입니다. 시간은 채워졌는데 아침에 개운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용량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
여기에 두 가지가 겹칩니다. 하나는 내성입니다. 같은 용량으로 얻는 효과가 시간이 지나며 줄어듭니다.
다른 하나가 더 까다롭습니다. 줄이거나 건너뛰면 원래보다 잠이 더 나빠지는 반동성 불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면 고리가 생깁니다. 효과가 줄어 용량을 올리고, 줄여보려 하면 며칠간 더 못 자고, 그래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약이 없으면 못 잔다”는 경험의 상당 부분은 원래 불면이 아니라 이 반동 구간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문제는 밤보다 낮입니다
고령 환자에게는 무게중심이 옮겨갑니다. 미국노인병학회가 발표하는 Beers Criteria 2023년 개정판에서는 벤조디아제핀 전 종류를 65세 이상에서 회피하도록 권고하며, 인지기능 저하와 섬망, 낙상, 골절, 교통사고 위험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졸피뎀을 포함한 이른바 Z-drug 계열도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이유로 회피 대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서 보실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짧게 작용하는 약이 오래 작용하는 약보다 더 안전한 것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반감기가 짧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짐작은 근거와 맞지 않습니다.
밤에 잘 잤는지보다, 낮에 휘청거리거나 기억이 흐릿하지 않은지가 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시점이 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뜻인가
가장 먼저 말씀드릴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한 달 이상 복용하셨다면 갑자기 중단해서는 안 되고,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서서히 줄여야 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약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처방은 필요해서 시작된 것이고, 지금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작할 때의 조건과 몇 년이 지난 지금의 조건이 같은지는 한 번쯤 점검해볼 만합니다.
점검은 처방하신 의사 선생님과 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저희가 맡는 부분은 그 과정에서 잠을 방해하는 다른 요인, 즉 밤에 심해지는 통증이나 내려가지 않는 각성 상태를 함께 다루는 쪽입니다.
이런 신호가 있으면 진료에서 말씀해 주세요
- 용량이 예전보다 늘어 있는 경우
- 낮 졸림이 심하거나 최근 기억이 흐릿한 경우
- 밤에 화장실 가다가 휘청거린 적이 있는 경우
- 술과 함께 복용하고 계신 경우
- 코골이가 심하다는 말을 듣는 경우
약을 탓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면제는 급성기에 분명한 역할이 있습니다. 며칠을 못 자서 무너지는 상황에서 잠을 붙여주는 것은 필요한 개입입니다.
문제는 그 역할이 몇 년 뒤에도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잠을 끌어오는 도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잠을 유지하는 조건 자체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몇 알을 드시느냐보다, 몇 년째 같은 이유로 드시고 있느냐를 한 번 들여다보시면 됩니다.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래 먹으면 잠이 오히려 나빠지나요?
잠드는 것은 유지되더라도 잠의 구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장기 복용 시 얕은 2단계 수면이 늘고 깊은 수면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고령자 연구에서는 가장 얕은 단계가 많고 깊은 단계가 적으며 전환이 잦은 양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시간은 채워지는데 개운하지 않다는 말씀이 여기서 나옵니다.
용량이 늘었는데 제 의지 문제인가요?
아닙니다. 내성으로 같은 용량의 효과가 줄고, 줄이려 하면 반동성 불면으로 며칠간 더 나빠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원래 용량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구조적인 문제이지 결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짧게 작용하는 약으로 바꾸면 안전한가요?
Beers Criteria 2023년 개정판에는 짧게 작용하는 벤조디아제핀이 오래 작용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지는 않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약제 변경은 반감기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어서, 처방하신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어르신이 드시는데 걱정됩니다.
65세 이상에서는 벤조디아제핀 전 종류와 졸피뎀 계열이 회피 권고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고, 근거로 인지기능 저하, 섬망, 낙상, 골절, 교통사고 위험이 제시됩니다. 다만 임의 중단이 더 위험하므로, 걱정되신다면 다음 진료에서 감량 가능 여부를 여쭙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럼 지금 끊어야 하나요?
이 글을 읽고 바로 중단하시는 것은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한 달 이상 복용하셨다면 갑작스러운 중단은 위험하며 서서히 줄여야 합니다. 필요 여부와 감량 계획은 처방하신 의사 선생님의 판단 영역입니다.
